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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3 結束天上說法回到人間的佛陀千佛曼陀羅系列·44
結束天上說法回到人間的佛陀 穿越天上、虛空與地面的佛陀的歸還
文·本覺法師(中央僧伽大學教授)
智者修禪定,喜出家寂靜。正念正覺者,天人所敬愛。 ——《法句經》
據巨海法師編譯的《法句經》解釋,以上偈頌是佛陀在天上為母親説法後,回到人間時為舍利弗及眾弟子所說的。
印度有個叫僧伽施(Sankasya)的地方,是佛教徒所熟悉的八大聖地之一。佛陀曾為往生兜率天的母親摩耶夫人到天上説法三個月,過後回到人間時便降臨在僧伽施,此地因此聞名遐邇。世尊以其神通力自由進出天上與人間,而僧伽施這個地方則具有連接天界與人間的象徵意義。佛陀則因往返於天上人間為母説法,而被視爲實踐世間與出世間孝道的聖者。如今,前來僧伽施的訪客絡繹不絕,但這裡仍一片寂靜,芳香四溢。阿育王在巡訪佛陀聖地後建塔紀念,稱爲“阿育王石柱”。僧伽施也有阿育王所建的象頭石柱遺跡,證明這裡曾是世尊降臨之地。
佛陀在成道後的四十五年裏度化了許多人。爲往生的母親説法,實乃超越生死的孝道之極致,可視爲一種救援往生者的行爲。佛陀不僅在人間說法度眾,而且還能到天上去做同樣的事情,這則神秘不可思議的故事一直流傳至今。
到天界為母説法
佛陀在舍衛城的菴羅林中留下化現千佛的奇跡後便不見蹤影。隨後,佛陀昇上忉利天宮為母親説法。《佛昇兜率天為母說法經》(譯者注:經名似乎有誤。查大藏經内僅有《佛昇忉利天為母說法經》。)中記載了佛陀昇上天界為母説法的情景。經典中強調佛陀乃依智慧所生,並非由摩耶夫人所生。
然而,佛陀爲了報答摩耶夫人的恩惠而到天上説法,然後再降臨人間。在這項奇跡發生的僧伽施,至今仍留有佛陀降臨時踩過的三寶階的破碎雕刻品,建築物内部則飾以展現昇天之路的繪畫。
相傳佛陀在忉利天的三個月期間,人間流傳了許多描繪佛陀的逸事。據説懷念佛陀的國王用栴檀香木雕刻了佛陀的相貌,是為佛像之始;蓮華色比丘尼則爲了比別人搶先一步迎接從天上歸來的佛陀,而以飛向空中去迎接佛陀。
蓮華色比丘尼的熱情及神通力雖然頗了不起,但卻似乎不為佛陀所嘉許。這是因爲須菩提尊者在靈鷲山時得知佛陀從虛空而降,原本打算出去迎接,但就在起身的那一刻,他卻領悟到諸法空相的道理,於是便不執著於來去變化的現象,而端坐著在内心迎接佛陀歸來。與大顯神通、飛向空中迎接佛陀的蓮華色比丘尼相比,佛陀更讚賞領悟諸法空相、在内心迎接佛陀的須菩提尊者,稱許他為最先迎接如來的弟子。
在四度空間展開的盛大饗宴
佛陀在天上逗留時,神通第一的目犍連尊者曾爲了拜見佛陀而到天上去請安,智慧第一的舍利弗尊者則一邊在僧伽施結夏安居,一邊接受尚在天界的佛陀的教導。
這是一場盛大的饗宴,其中心為佛陀為母説法之孝心,由佛陀與眾弟子參與,而地點則是超越我們常識的、連接天上與人間的四度空間。舍利弗尊者是與大衆一起正式迎接佛陀從天上歸來的弟子。佛陀沒有忘記人間而再次從天上降臨,衆人對此皆感到無比歡喜。佛陀被眾天王與眾弟子環繞著,身上散發出神聖的慈悲光明,遍佈整座僧伽施市。看見這種盛大輝煌的場面,舍利弗尊者深受鼓舞,深知此乃首次目睹之盛大光景,於是讚嘆佛陀是人、天惟一的導師。
當時的人們能和舍利弗一起親眼目睹佛陀的光明照遍整座城市,相信一定是幸福洋溢的。不論是天上還是人間,衆人皆發自内心地歡迎、讚嘆佛陀。舍利弗與衆人因有幸向佛陀這位最高的導師學習而滿心歡喜,佛陀則以上述偈頌回答前來迎接、讚嘆的衆人。
“智者修禪定,喜出家寂靜。正念正覺者,天人所敬愛。” 再讀一遍這首偈頌,我們就會發現佛陀很有自信並十分歡喜地描述自己的境界。這首充滿喜悅的偈頌表達出佛陀的世界已無區分人間與天上的界線,就連天人也敬愛佛陀。(蕭悅寧譯/20091113)
出處:2008年12月8日·韓國《法寳新聞》977號
November 01 鴦掘魔的懺悔 앙굴리말라의 참회千佛曼陀羅系列·42
鴦掘魔的懺悔 只要眞誠懺悔,惡人亦能成聖者
文·本覺法師(中央僧伽大學教授)
若作惡業已,覆之以善者,彼照耀此世,如月出雲翳。 ——《法句經》
佛陀所說的以上偈頌與鴦掘魔比丘有關。鴦掘魔十分有名,其故事廣爲人知。在出家前,鴦掘魔是個很單純的婆羅門青年。對於老師的教誨,他看得比性命還重要,總是努力實踐奉行。然而,邪惡的老師卻告訴他必須殺死一千個人、用一千根手指做成項鏈才能成就道業,終於使他淪落為街頭的殺人魔,成爲悲劇的主人公。
佛陀的教誨:停止
已經變成街頭殺人魔的鴦掘魔爲了獲得第一千根、也是最後一根的手指而在大街上遊蕩。他的母親聽聞此事,爲了阻止兒子繼續殺人而跑上大街去。然而,正在尋找最後一個獵物的鴦掘魔此時已六親不認,母親在他眼中也不過是獲取最後一根手指的對象而已。爲了獲得一千根手指的最後一根,鴦掘魔朝著自己的母親跑去。此時,佛陀用慧眼看到了這副光景。爲免這對母子陷入慘絕人寰的悲劇,佛陀大顯神通,飛到鴦掘魔的面前。鴦掘魔一見到佛陀,便高舉沾滿血跡的利刃向前衝去。
奇怪的是,不管鴦掘魔怎麽向前跑,他和佛陀的距離總是保持不變。鴦掘魔怒氣衝天,大吼道:“你這沙門,給我站住!”佛陀則以充滿慈悲的聲音回答說:“鴦掘魔啊!如來已經停下來,一直站在此處,不知停止而衝向險境的,不正是你自己嗎?”鴦掘魔的原本滿懷殺氣,但聼完佛陀的這一句話,心裏卻頓時升起一股清澈明亮的感覺。
心境出現變化的鴦掘魔反問佛陀:“如來説自己已經停下來、站著不動,而我卻不知停止,這句話是甚麽意思?”佛陀回答說:“所謂‘如來已停下來,站著不動’,是指如來用慈悲心來保護一切生命,讓他們的痛苦有所止息的意思。制定不殺生的戒律,要衆人不殺害其他生命、直視輪回的牢籠,並以保護生命的意志力來停止殺傷的行爲,這正是如來‘停止而站立不動’的表現。不殺生戒乃是爲了保護一切生命免遭人類殺傷之痛。你殺害了許多生命,給衆人帶來了痛苦與恐懼,卻仍不知道那是罪惡的,所以說這是‘不知停止’的愚昧行爲。”
被扔石塊,忍辱精進
鴦掘魔當下突然對自己犯下的惡行不寒而慄。他丟掉沾滿血跡的刀,也脫下了挂在脖子上的、由手指串成的項鏈。鴦掘魔馬上皈依佛陀,以出家人的身份開始過上新生活,並向一切生命懺悔,好好地約束自我。鴦掘魔上街托缽時,總有許多人罵他是殺人魔並朝他抛擲石塊,但他卻毫不閃躲,欣然承受自己招來的果報,如此繼續修行下去。佛陀見到出外托缽卻變成血人歸來的鴦掘魔,稱讚他是忍辱第一的弟子。
有一天,鴦掘魔在托缽途中遇見一名正在承受產前疼痛的孕婦。孕婦發現鴦掘魔這位修行人,懇切地要求鴦掘魔幫她減輕疼痛。自己曾是殺人魔,但如今卻被一名孕婦祈求協助新生命的誕生,鴦掘魔一時不知所措,逃亡似的跑回佛陀的住處,以深深的悔恨之心向佛陀稟告了孕婦的事情。佛陀聼了以後滿懷慈悲地向鴦掘魔開示道:“你趕緊回到那名孕婦身邊,告訴她說‘我鴦掘魔不傷害任何生命,願以此功德,助你脫離痛苦,順利分娩’吧!”聼完佛陀的開示,鴦掘魔更加驚慌,淚眼淒切地仰望佛陀。佛陀以莊嚴的聲音喚醒他:“鴦掘魔啊!你在如來家中重獲新生後,不是再也沒有傷害任何生命了嗎?”
據説,鴦掘魔當下領悟到生命的實相,進入了聖者的境界。他馬上回到孕婦身邊,對孕婦説:“自從在如來門下重獲新生,我就不曾傷害任何生命。願以此功德,助你脫離痛苦、順利生産。”根據記載,孕婦霎時間擺脫一切痛苦,誕下一名健康的嬰兒。鴦掘魔對孕婦所說的這段話,據説是佛教裏最早的眞言(mantra)。
懺悔功德昇華為眞言
這是有關窮兇惡極的鴦掘魔在佛陀的教導下停止惡行,對抛向自己的石塊毫不閃避,實踐忍辱之行,最終登入聖者境地的故事。這也是一則神聖的故事,告訴我們:停止造惡、虔誠懺悔的人,其至誠之心甚至能昇華為協助孕婦順產的慈悲眞言。在某一瞬間將自己的過失徹底抛棄,那過失本身就會絕跡。默默承受因犯下過失而招來的果報,並將其昇華的至誠之心,最終將帶來身為聖者的新生。如同衝出雲層、照亮世間的月亮一般,通過“惡人鴦掘魔”的事例,佛陀的教誨如今更顯得光芒耀眼。(蕭悅寧譯/20091101)
出處:2008年11月17日·韓國《法寳新聞》974號 May 06 민주주의의 죽음October 21 좌익 독립운동가 Shamsiah Fakeh 별세[조국 소식] 좌익 독립운동가 샴시아흐 화깨흐 별세
소열녕 정리
말레이 여성 좌익 운동가, 말라야공산당 제10지대 전사 샴시아흐 화깨흐(Shamsiah Fakeh)는 10월20일 오전 9시 경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날 오후 5시 20분, 샴시아흐의 유해는 약 50명의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콸라룸푸르의 한 이슬람교 공동묘지에 안치되었다.
샴시아흐의 막내 아들 자마루딘 이브라힘(Jamaluddin Ibrahim)에 따르면 폐 감염에 걸린 샴시아흐는 이틀 전 병원에서 퇴원한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혼미 상태에 빠졌다.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는 샴시아흐가 이미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샴시아흐 화깨흐는 훌륭한 독립운동가이자 존경 받는 말레이계 여성 지도자이다. 그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해 왔으며 말레이반도의 방방곡곡에 발자취를 남겼다. 좌익 조직인 ‘각성 부녀회(AWAS)’의 회장으로서 샴시아흐는 ‘말레이민족당 청년단’ 단장인 아흐마드 보스따만(Ahmad Boestaman)과 손을 잡아 말레이 청년 남녀를 이끌고 영국 식민지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각성 부녀회’가 불법조직이라는 누명을 쓰고 1948년 영국 식민지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영국 식민지 정부가 말라야에서 계엄령을 선포한 후에, 샴시아흐는 산으로 들어가 말라야공산당 제10지대에 가입했다. 그녀는 동남아 인민의 민족 독립 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해 남편 이브라힘과 함께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지칠 줄 모르는 반식민주의 항쟁을 벌였다.
말라야공산당을 떠난 후에 샴시아흐는 중국의 한 제철소에서 일하면서 중국인민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89년 말라야공산당이 태국 핫냐이에서 말레이시아·태국 양국 정부와 평화 협의를 체결함에 따라 샴시아흐와 그녀의 가족들은 드디어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1994년 7월 23일 샴시아흐가 가족들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귀국했다.
고국에 돌아온 후에 샴시아흐는 자손들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인생을 되돌아볼 때 샴시아흐는 식민지 정부에 반항해 말라야공산당에 가입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런 투쟁이 식민지 정권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위안이 되며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다음 세대가 정확한 방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l 이 기사는 獨立新聞在線의 보도에 의해 정리한 것이다..
August 19 조계사 교육관 방문 소감비가 내리는 광복절 전날이었다.
조계사(曹溪寺)의 기초교육과 금강경(金剛經, Prajnyaa Paaramitaa Sutra) 수업을 듣고 싶어서 조계사 교육관에 찾아갔다.
거기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금강경을 강의하실 분이 누구냐고 물었다. 조계사에 계시는 스님이라고 대답했고 법호까지 알려주었다.
이어서 외국인도 수강신청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작원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은 그냥 시청해도 되는데......이해 능력이나 사고 방식이 우리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것들을 감안해야 돼요."
언어로 인한 이해 지장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사고 방식의 차이는 수업 듣는 것과 무슨 상관 있을까? 그래서 내가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강의만 하실 거예요? 아니면 질문과 대답, 혹은 토론 식으로 할 거예요?"
직원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토론 같은 건 대학교에서만 하죠. 대학생들의 수준이 비슷하잖아요. 여기 사람들의 레벨이 다 다르니까..."
"그럼 듣기만 하는 건가요? 토론은 전혀 안 하고?"
"스님들이 이미 출가하셨고 공부도 많이 하셨으니까.....우리 재가 불자(在家佛子)들이 듣기만 하죠."
참 웃기는 소리다.
먼저 출가하신 스님들이 재가 거사(居士)보다 수행을 더 잘 하신다는 생각은 일종의 선입견이자 잘못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정토종(淨土宗) 큰 스님 정공(淨空)스님은 대만에서 이병남(李炳南) 등 재가 거사들에게 오랫동안 불교 공부를 하셨단다. 스님들이 미리 출가해서 경전 공부 많이 했으니 우리 재가 불자들이 질문하지 말고 듣기만 해야 한다는 것은 강의하실 스님들이 갖고 계시는 인식인지 그 교무국 직원의 개인 생각인지 모르겠다.
또한 레벨이 달라서 토론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불교 경전들을 읽어보라. 완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의 "레벨"이 제자들의 "레벨"과 같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언제 "수준이 낮은 자가 질문하지 말고 내 설법을 조용히 듣거라"고 하신 적이 있는가? 불교 경전은 늘 제자와 부처님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유교의 논어(論語)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러한 태도는 불교적 사고 방식도 아니고 유교적 사고 방식도 아닌 괴물이다. 문화 차이라고 해서 변명하려면 그런 말을 안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이상한 생각은 결코 "한국 스타일"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의할 사람이 경전에 대해 깊이 이해 못하고 학생들에게 질문(도전?)을 받기 두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大韓佛敎曹溪宗總本山)인 조계사에서 이러한 사고 방식으로 신도 교육을 진행하는데 한국 불교의 미래는 과연 잘 될 것인가?
참으로 유감스럽구나. November 22 21세기 중국 조선어가 직면한 문제와 그 대책上星期四發表的作業,意外地在班上引起了一場小小的“風波”。可惜老師在“火勢漸猛”時突然說:“我們只談語言問題就好了”,不然我還是想向韓國同學強調要懂得區分國家認同與民族認同。感謝愛鮮師姐幫我修改病句,民大朝文系畢業的果然不同凡響。 ^^
21세기 중국 조선어가 직면한 문제와 그 대책
[21世纪中国朝鲜语所面临的问题及其对策] 저자: 太平武(中央民族大學校朝鮮語文科副教授)
출처: 《民族教育》(2000年第3期) 내용 요약:
본 논문은 3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졌다. 첫 부분에서 저자는 21세기 중국 사회의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 저자는 中國 朝鮮族의 사회적인 특징과 문제를 서술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中國朝鮮語의 특징,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21세기에 中國朝鮮族이 직면한 주요 문제는 3가지가 있다.
저자는 21세기 中國 朝鮮語의 특징과 문제를 3가지 視角으로 고찰하였다.
중국조선어의 문제점에 있어서 저자는 아래와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간단한 평론: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조선족의 언어 위기는 인구의 마이너스 성장 및 인구 유동과 관련이 있다. 한 언어의 존립과 멸망 여부는 사용자에 달려있다. 조선어 사용자가 감소된다면 조선어는 사라지거나 漢化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정치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의 예를 보자. 싱가포르공화국은 1965년에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한 뒤, 영어 위주의 언어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영어를 중요시하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자기의 母語(注1) 를 꼭 필수 과목으로 배워야 한다(注2). 그래서 싱가포르 사람들 은 영어를 중요시하지만 최소한 자기 민족의 언어를 구사할 수가 있다. 중국중앙정부에서 조선족들이 반드시 조선어를 배워야 한다고 정책적으로 규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조선어를 규범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어를 많이 참고해야 한다. 그러나 완전히 한국어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국 조선어는 조선어(북한어) 및 한국어와 같이 Korean 언어의 變異體(variety)이며 한국어는 중국 조선어보다 순수성이 더 높은 것이 아니다. 중국조선어가 한국어보다 더 漢化된 것은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영국영어와 미국영어의 관계처럼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중국조선족도 자신들의 언어가 계속 漢化되는 것을 막아야 된다. 특히 신조어를 만들 때 漢語에서 그대로 옮기지 말고 조선어의 사유 방식으로 새로운 한자어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중국에는 한국어 열풍이 대단하다. 중국조선어의 지위를 높이는 데 이런 열풍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한족들이 열광적으로 배우는 한국어는 중국조선어와 분명히 다르다. 그들도 중국 조선족보다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또 그들은 한국어나 조선어를 母語(본 민족 언어)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한국어 열풍이 중국조선어의 지위를 높여줄 것이라는 지나친 기대는 결국 실망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중국 조선족들은 다른 54개 소수민족처럼 자기의 민족언어를 사랑해야 한다. 민족 歸屬感을 키우며 조선어는 중국 조선족들이 민족 문화를 계승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다는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여야 중국 조선어의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注1: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母語라는 것은 언어학적인 mother tongue 개념이 아니라 本 民族의 언어를 가리키는 것이다. 注2:“Our bilingual policy requires all pupils who are Singaporeans or Singapore Permanent Residents to study their mother-tongue language.” 싱가포르 교육부 사이트 참조. http://www.moe.gov.sg/esp/eduinfo/mt.htm October 26 人生의 갈림길?오랜만에 康謨를 만났다. 정장입는 내 친구의 멋진 모습을 처음 봤다. 강모는 서울대학교 농대에서 면접을 보러 오늘 일부러 올라왔다. 서울대와 경북대 두 학교를 지원했는데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되는지 고민중이다. 내 친구의 이런 고민을 보니까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원래 한국에 올 생각이 없었다. 졸업 몇달 전에 우연히 장학생 모집 공고를 봐서 지원서를 냈다. 한국어를 정말 조금 밖에 못했던 나는 주말레이시아 한국대사권에서 영어로 면접을 보고 붙었다. 그 때 나도 진로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국가방송국에서 분명히 본격적으로 방송인이 될 수 있었는데 드디어 이 꿈을 포기하고 진학의 길을 선택하였다. 사람들이 자꾸 왜 한국에서 중국어를 연구하냐고 묻고 국내에 있었으면 더 큰 성취가 있겠다고 감개하는데 나는 절대 유감스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강모에게 잘 생각한 다음에 결정을 내고 후회하지 말라고 권했다. 이 친구는 대학원 진학 문제때문에 계속 고민해 왔으니 시험 공부를 방해하게 되었다. 내가 신체는 바쁘게 살아도 마음은 여유롭게 살면 된다고 우리 친구를 격려하였다. 헤어졌을 때 강모는 미소를 띠면서 힘들게 올라왔는데 기분이 좋게 내려간다고 말했다. 서울대에 붙든지 경북대에 붙든지 강모에게는 다 문제가 아니다. 나중에 훌륭한 농학 박사가 될 거니까 이런 문제때문에 고민하면 안 되지? 심사숙고한 후 결정한 일을 계속 열심히 하길 바란다. ^^
唉!대학원에 들어와서 한국어 작문 실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참 무서운 일이네. 文筆真的鈍了許多。如果讓我現在用韓文寫一篇論說文去跟人辯論韓文專用한글전용的問題,我肯定可以洋洋灑灑寫出幾千字來(語法錯誤多寡則是另外一囘事),但寫起記敍文怎麽就那麽想要草草收兵呢?唉~ 還是趁寒假好好閉關苦練吧~
September 26 조상제사 보면서 향수 느껴
중국계 가정에서 모시는 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하느님(天公·천공) 또는 옥황대제, 주신(主神), 주신 이외의 다른 신, 조상, 부엌의 신, 토지 신 등. 하느님과 주신은 기본적인데 그밖의 다른 신들은 집안에 따라 모시는 게 다르다. 여기서 하느님이라는 것은 기독교 등의 유일신이 아니라 하늘 또는 선계(仙界), 천계(天界)의 통치자를 이른다.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집안에서 하느님을 모시지 않고 항상 집 대문 앞 왼쪽 벽에 작은 신단을 붙여서 모신다. 좌존우비(左尊右卑) 사상에 따라 천공의 신단은 꼭 왼쪽에 있어야 하지만 요즘 어떤 가정은 왼쪽 벽에 신단을 붙이기 불편하니 관례에 따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집에서 모시는 신은 주신이 꼭 있어야 한다. 이른바 주신이란 것은 그 집안에서 위치가 가장 높은 신이다. 이 주신은 전통종교 세계에서 다른 신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 집안의 주신이 되면 무조건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신보다 높다고 봐야 한다. 집집마다 부엌간이 있으니 부엌의 신을 또 모셔야 한다. 부엌의 신은 조군이라고 하며 조군의 위패는 주로 부뚜막 오른쪽 벽에 모신다. 조군은 세상에 음식을 만드는 것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행한 선악을 살펴보고 사람의 수명과 화복도 주재한다고 한다. 매년 음력 12월24일 조군은 하늘에 올라가서 인간들이 일년 동안 행한 선악을 천제(옥황대제)에게 보고하니 사람들은 조군의 입이 막히고 인간의 험담을 이야기할 수 없도록 그 전날 즉, 음력 12월23일에 조군에게 단 음식을 올린다. 말레이시아 중국계들은 주로 연고(한국의 떡과 비슷한 찹쌀로 만들며, 설날 먹는 중국 단 음식)를 올린다. 말레이시아 중국계들은 주로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과 저녁에 가신에게 제사지내는데 평일에 매일 한번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일상 제사는 주로 집안의 여주인이 저녁에 향(가지로 만든 향)을 올리는 것이다. 먼저 집 밖에서 향을 하늘을 향해 올린다. 이것은 집 대문 왼쪽에서 모시는 천공에게 올리는 것이다. 그 다음에 천공 위패 앞에 있는 향로로 향을 한 가지 꽂는다. 왜 한 가지만 꽂느냐 하면 홀수는 양(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거실에 들어가서 신단 가운데에서 모시는 주신과 주신 왼쪽에서 모시는 다른 신에게 향 한 가지씩 올린다. 그 다음에 조상에게 향을 두 가지 올린다. 이것은 짝수가 음(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조상에게 향을 한 가지만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도 예전에는 장독대에 찬물 떠놓고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부터 여러가지 종류의 신을 집집마다 모셨다고 들었다. 고도의 산업화와 더불어 제사를 지내는 것도 느슨해지고 삶이 대체로 서구화되면서 다양한 신이 모습을 감췄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통의 흔적은 남아있는 것 같다.
August 30 国庆感想 국경일 소감한글 전용 판 (韓글 專用 版)
이 나라는 원래 황폐한 논밭이었다. 말레이군도, 중국대륙, 남아반도에서 옮겨 온 우리 조상이 적수공권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아가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였다. 우리 전체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이 땅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느냐? 이 나라는 처음부터 이민 국가이었다.
48년동안, 무수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나라의 독립은 피를 흘리지 않게 얻었다면 그게 분명히 거짓말이다. 말라야공산당이 없었으면 영국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항일 전쟁, 5.13 유혈 충돌, 학생 운동 등 정의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에서 희생된 무명의 영웅들을 잊지 말자! 그리고 아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포들, 기본 인권을 얻지 못하는데다가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원주민 동포들에게 참회하고 도와주자!
이 아름다운 나라의 미래는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반드시 남겨 놓지 않게 민주화돼야 광명에 찬길이 보인다. 다양성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전세계의 모범이 될 만한 Malaysia Boleh정신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사랑하는 조국, 48살 생일 축하한다.
===================== 國漢混用版 (국한혼용판)
이 나라는 原來 荒廢한 논밭이었다. 말레이群島, 中國大陸, 南亞半島에서 옮겨 온 우리 祖上이 赤手空拳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아가서 새로운 世上을 創造하였다. 우리 全體가 아니라면 누가 敢히 이 땅의 唯一한 主人이라고 主張하느냐? 이 나라는 처음부터 移民 國家이었다.
48年동안, 無數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나라의 獨立은 피를 흘리지 않게 얻었다면 그게 分明히 거짓말이다. 말라야共産黨이 없었으면 英國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抗日 戰爭, 5.13 流血 衝突, 學生 運動 등 正義를 爭取하기 爲한 運動에서 犧牲된 無名의 英雄들을 잊지 말자! 그리고 아직 貧困을 벗어나지 못하는 同胞들, 基本 人權을 얻지 못하는데다가 우리의 記憶에서 잊혀진 原住民 同胞들에게 懺悔하고 도와주자!
이 아름다운 나라의 未來는 우리가 얼마나 努力하느냐에 달려 있다. 반드시 남겨 놓지 않게 民主化돼야 光明에 찬길이 보인다. 多樣性을 眞心으로 認定해야 全世界의 模範이 될 만한 Malaysia Boleh精神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祖國, 48살 生日 祝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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